UD Trucks

일본 저온 유통 체인의 첫번째 고리가 되다.

후쿠오카 가족 사업체는 민세이(Minsei) 디젤 (UD트럭 전신) 트럭을 택해 냉각장치를 추가하여 일본내 저온 운송 및 냉동 창고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일본은 특정한, 대체로 저온 범위내에서 제품을 유지하는 공급 체인에 필요한 기술인 - 저온 유통 기술의 최첨단에 있다.  정부는 개발 도상국내의, 효과적인 예방 접종 프로그램을 위해 중요한 저온 유통 체계 제반시설을 개선하기 위해 유니세프와 함께 오랫동안 일해왔다.

하지만 물류를 저온 유지하는 일본의 전문 지식의 근본은 무엇인가?

이 모든것은 후쿠오카에서 한 진취적인 여성과 UD트럭 전신인, 민세이 디젤산업에 의해 만들어진 트럭 한 대로 부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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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반의 원조 트럭과 후쿠오카우뉴(Fukuokaunyu) 팀

시주 토리수(Shizu Torisu)는 1909년 나가사키 현에서 태어났다.
24 살때, 그녀는 가족 사업으로  아미모토(어업기업체)를 하고 있던 코타로 토미나가(Kotaro Tominaga) 와 결혼했다.
부부는 더욱 큰 소비자 시장을 두드릴 희망을 가지고 후쿠오카로 이주했다.
그러나 곧 전쟁 기간의 가혹한 현실을 맞아 그 희망은 뒷전이 되어 버렸다.
코타로 토미나가가 질병에 쓰러졌던 때에 벌어진 일이다.
"시주에게 아미 모토 사업이 남겨졌습니다." 그녀의 손자 타이스케 토미나가(Taisuke Tominaga)가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사업을 계속 이어야 했습니다다. 하지만 어업은 불안정했고…기후에 의해 좌우되거나 심지어 어떤해의 운에 따라 달렸죠. 그래서 사업 확장할 방법을 찾았고 가족은 운송업을 해보기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

1956년 토미나가 부인은 후쿠오카우뉴(Fukuokaunyu) 주식회사 ( "운송"을 의미하는 우뉴(Unyu)와, 도시/현의 이름을 조합) 설립했다.  그녀는 민세이(Minsei) 디젤과 야노(Yano)라는 또다른 후쿠오카의 특수 목적 차량 회사와 협력을 맺으며 드라마틱하게 일본을 변화시킬 여정에 출발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했다.  올해 후쿠오카우뉴의 사장 겸 CEO가 된 토미나가 씨가 말했다. "그것은 1957 년이었죠"   그는 블라인드를 통해 늦은 오후 햇살이 블라인드를 통해 회의실에 스며드는 사무실중 한곳에서 이야기를 전한다.  "점령은 끝났으나, 미군 기지가 남아 있었어요. 미군은 자체 방식으로 기지내 신선한 음식을 제공했죠. 그러나 그 해에 미군은 그 작업을 현지 회사에 아웃소싱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일본에 냉장 운송 수단은 없었다.
토미나가씨는 말을 이었다. "군에서는 일본의 일반화물 운송 납품 회사와 연락했죠"  "그러나 일본의 회사들은 냉장 운송에 대한 기회를 거부했습니다." 토미나가 부인은 기회를 받아들였다.  야노와 민세이 디젤이 큰 그림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후쿠오카우뉴는 냉장 상자를 운반 할 수 있는 트럭을 필요로 했다.  토미나가씨는 후쿠오카 동료 사업자로서, 자신의 할머니와 야노(Yano) 설립자 코이치 야노(Koichi Yano)가 자연스런 협력을 맺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야노 씨의 회사가 냉장 시스템의 책임을 맡아,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한편 민세이 디젤은, 토미나가 씨가 비중이 크다고 한 7.5-8 톤 트럭들을 제공할 수 있었다.
일에 관련된 모든이에게 위험성이 높았다.  "만약 트럭 제조가 실패했을 경우" 라고 토미나가 씨는 강조한다, "후쿠오카우뉴는 파산할 수도 있었을겁니다. 민세이 디젤사의 누군가는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자살행위가 될 수 있어', 라고 우리의 회사에게 전했죠."
그런 우려는 세 회사가 퍼즐 맞추기와 비슷한-어떤 결과물을 내야하는지 잘 알지도 못한체-그런 프로세스를 밀고 나가는 것을 막는데 충분하지 않았다.  냉동 압축기는 가장 지긋지긋한 문제었다.  "그때 미국이 압축기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아마 단순히 수입하는 문제일 것 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 토미나가 씨는 말한다.
그러나 그때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1958 후반에, 그들은 냉장 트럭을 제조해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모든 압축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마침내, 그들은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토미나가 씨는 말한다. "그들은 옛날 미군 압축기를 획득 할 수 있게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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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세이 디젤의 원조 배지



그들은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으나 미군으로부터 도움의 손길을 받았다.

미군은 폐처리 예정의 다수의 구형 냉동 장치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친절하게도 후쿠오카우뉴사에 아직 사용가능한 압축기 한대를 넘겨 주었다.  압축기만이 유일한 장애물은 아니었다.  교통국이 표준형이 아닌 트럭인 민세이-야노의 냉장 트럭을 등록시키는데 꺼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토미나가부인은 교통국을 설득하였고, 후쿠오카우뉴 냉동 서비스는 한 미군 사령관에 의해 제안된 이름으로 탄생했다.  곧, 일본 정부는 냉장 수송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 했다.  1965년 과학 기술청은 냉동유통을 활성하기 위한 의도를 밝혔다.   1967년까지, 냉동 서비스는 전체 120대의 트럭을 보유하였다.

토미나가 씨는 말한다. "이 기술은 크게 경제를 변화시켰습니다"  "냉동 운송과 가정용 냉장고의 보급 확장은 확실히 식품 사업과 일본 식단을 바꾸었죠."  이것은 부엌 혁명이라 부를수 있다.  현재까지 거슬러 올라와보면, 후쿠오카우뉴사는 단순히 냉동 서비스를 제공한것 이상으로 아니라, 냉장 서비스를 특별화시켰다.  전국 곳곳 기지에서 독점적인 컴퓨터 시스템을 사용하여, 회사는 식품부터 의약품에 이르는 모든 것을 정확한 온도 유지 상태로 제공 할 수 있습니다.  "그 기술만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토미나가씨는 강조한다.   "그건 당신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린거죠. 상자 하나를 운송한다고 칩시다. 상자가 파손되는 경우엔 그안의 내용물 상태가 훌륭해도 좋지 않죠. 온도는 그런것과 무관합니다, 하지만 이점이 운송에 대한 일본의 접근 방식을 잘 설명해 준다고 생각합다."  후쿠오카우뉴는 현재 도로위의 28대와 함께 UD 트럭의 컬렉션을 구축하는 과정중이다.   회사들이 역사에 의해 함께 묶인 것처럼, 그들은 함께 미래로 향하고 있다.

UD트럭이 여전히 니산 디젤이던때인 2006년에, 후쿠오카우뉴의 50주년 기념 준비에서 수송업체와 트럭 제조사는 그들의 결속을  더욱 굳혔다.  토미나가 씨는 말한다. "큰 이정표를 축하하기 위해, 우리는 닛산 디젤에게 원조 냉장 트럭 중 하나를 재제조하는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 일을 위한 첫번째 단계는 민세이 T80의 섀시를 구하는 것 이었다.  그는 "닛산 디젤에서 T80 한대를 발견하더라도, 차주가 그 차를 팔거라는 보장은 없었죠"고 회상한다.   "그들이 찾은 첫 번째차의 차주는 그 트럭이 수집가용 아이템이라는 이유로, 팔기를 거절했고. 두번째 찾은 트럭은 복원한다해도 하기가 너무 어려웠을 거에요."

닛산 디젤은 히로시마에서 대박을 터뜨리기전까지 약 1년동안을 계속 찾았다.
그리고 나서, 토미나가씨는 말을 잇는다. "히로시마의 회사는 그들이 2대를 보유하고 있던 T80 트럭을 우리에게 팔기로 합의했습니다!"   닛산 디젤의 트럭 복원 노력에 대한 토미나가씨의 칭찬이 가득하다.  "그것은 마치 작업자들에게 기술 올림픽과도 같았습니다" "운전실에 구멍들이 나있었고 트럭의 상태는 아주 나뻤습니다. "  하지만 복구팀은 낡고 닳은 트럭은 새 트럭같은 상태로 되돌리게 위해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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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D 마크는 트럭의 스티어링 휠에 또한 부착되어 있다.

설계도를 사용하여, 야노 특수 목적 차량이 가세하여 FB-7 냉장 콤포넌트를 재건했다. 현재 후쿠오카우뉴의 사무실 외부에 거대한 유리 디스 플레이 케이스에 보관된, 완전 새 것 같은 운행 가능한 복제 트럭이 그 결과이다.

2006년이 후쿠오카우뉴에게 축제의 해였지만, 또한 슬픈 해이기도 했다. 5월에 시주 토미나가 는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토미나가 씨는 오히려 우연의 일치에 가깝다고 말한다 : 6월에 후쿠오카우뉴가 창립자 추모식을 열려는 하루 전날, 닛산 디젤과 야노 특수 차량은 트럭 복원을 끝마쳤다.  "우리는 추모식을 위해 트럭을 가져다 놓았어요"고 말했다. "많은 구세대의 사람들이 참석했고, 우리는 그들이 그 트럭을 보길 원했죠."  더욱이 최근에는, 후쿠오카우뉴, 민세이 디젤과 야노 특수 목적 차량은 함께 공식적으로 일본 혁신의 연대기에 들어섰다.

2012년 9월 11일, 국립 자연 과학 박물관은 소니 워크맨같이 세계를 바꾼 발명품들과 함께, 과학 기술에 대한 중요한 역사 자료로서
최초의 냉동 트럭을 등록했다.   박물관 팜플렛에 섀시는 1961년에 그리고 FB-7 냉장 콤포넌트는 1960년에 기록됬다.

남아있는 질문은 : 무엇이 토미나가 부인으로 하여금 남들이 보기에 너무 벅찬 도전을 계속하게 했는가?
토미나가 씨는 잠시 시간내어 그 질문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그녀가 왜 그 일을 했는지 정확히 말할기 힘듭니다. 그 당시 그녀에게는 도쿄에 있는 학교를 다니는 아이, 즉 내 아버지가 있었죠. 그녀는 회장이었지만 또한 어머니였습니다. 그리고 엄마로서, 아들에게 신선한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이유 중 하나였다고 생각해요."  "또 다른 요인은 그녀가 처음으로 냉장고를 보게 되었던 미군 기지 방문때로 보입니다. "
"나는 그녀의 직감이 이것이야 말로 일본 사회에 혜택을 줄거라 말했다고 믿습니다."
이렇게 하여, 토미나가 부인의 비전, 민세이의 섀시와 야노의 냉장 박스가 결합하여 일본 저온 유통 체인의 첫번째 고리를 만들어 냈다.  이제 이러한 링크는 해외로 뻗어나가고 있을뿐만 아니라 글로벌 사회에 혜택을 주고 있다.
"나는 시주의 직감이 이것이야 말로 일본 사회에 혜택을 줄거라 말했다고 믿습니다."